어둠이 가시기 전 신새벽부터 지리산 백무동으로 달려간다. 지리산 눈을 밟고 설경의 비경을 만끽하기 위해서. 지리산의 차가운 눈바람이 매섭게 불어 닥친다. 하동바위와 참샘을 지나고 소지봉을 오를 때부터는 엄청나게 내린 눈으로 러셀을 해야할 상황. 한걸음 한걸음 푹푹빠지는 눈을 밟고 천천히 오른다. 힘이든다. 그래도 설경이 있어서 즐겁다. 백무동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 3시간이면 될 거리를 3시간 56분이 걸렸다. 대피소에서 빵 하나 떡 하나 컵라면 하나를 점심으로 먹는다. 오후 1시다. 여기서 천왕봉까지 1.7km. 왕복하면 눈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2시간 15분은 걸린다. 그러면 백무동까지 오후 5시까지는 내려가야 하는데 오후 6시 30분은 되어야 내려선다. 어쩔수 없이 천왕봉을 포기한다. 백무동으로 Back 한다. 눈바람이 더욱 세차진다. 산행하면서 정상을 포기하는건 1983년 월악산 국립공원 지정전 지독한 비안개로 정상을 포기한 것까지 두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