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yang-si, Gyeonggi, South Korea
time : Sep 7, 2024 11:50 AM
duration : 5h 45m 28s
distance : 8.2 km
total_ascent : 851 m
highest_point : 826 m
avg_speed : 1.9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친구 아들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고민했다. 혼인이 오후 1시인데 주말 산행을 포기해야 하나? 내일은 조카가 결혼하는 날이라서 꼭 참석해야 하니 속된 말로 아다리가 맞지 않는다. 친구에게 카톡으로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축의금만 보냈다. 사실 결혼식을 마치고 산에 가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등산하는 차림으로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은 또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에 최종적으로 북한산에 가기로 결심하였다.
냉동실에 있는 베이글 빵 두 개, 토마토 두 개 그리고 단호박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넣어서 익혔다. 냉동식에 얼린 물병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지하철에서 읽을 책으로 전에 읽다 만 카프카의 ‘변신’을 챙겨 넣었다.
북한산 숨은벽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종로3가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였다. 그리고 구파발 역에서 704번을 타고 효자2동에서 하차하여 밤골 탐방안내소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전에 상수 형님을 따라 인수봉에 오를 때 접근로로 삼았던 길이다.
인수봉 릿지를 하러 갈 때는 정신없이 올라갔기에 그냥 흘려보냈던 풍광을 하나하나 눈에 넣으며 오른다. 장비를 갖추지 않았으니 바위에 오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아쉬운 길도 있다. 어깨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고 숨을 몰아쉴 때도 있는데 이를 보고 하산하던 산객님이 파스를 뿌려줄까 하고 친절하게 묻는다. 산에 오면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친절하고 남을 배려할 만큼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숨은벽 능선은 왼편으로 인수봉으로 오르는 인수릿지 능선과 오른편에 백운대로 향하는 파랑새 능선 사이에 숨어 있는 바위 길이다. 1억 8천만 년 전에 형성된 화강암 바위가 비바람에 깎이고 단단한 부위가 남아 절벽을 만들고 조각작품 같은 아름다운 바위를 만들어 놓았다. 이 단단한 바위 사이에 씨가 떨어져 겨우 살아남은 소나무는 최대한 뻗을 수 있을 만큼 뿌리를 내리고 바위 살을 빨아먹고 바위 피를 삼켜 바위처럼 단단하게 자란다. 이 북한산 바위틈에 자라는 소나무에게는 왠만한 태풍 쯤은 아무것도 아닐 터이다.
이 숨은벽 능선은 오후에 올라가야 한다. 오전에는 백운대의 그림자에 가려진 역광이라서 그 아름다운 풍광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이렇게 늦은 오후 시간에 숨은벽 능선으로 올라와 백운대에서 해지는 저녁 노을을 보고 하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영봉에서 일출을 보고 상장능선을 타고 내려와 솔고개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숨은벽 능선을 타고 올라와 백운대에서 일몰을 구경하고 캄캄한 밤길을 내려간 적이 있다. 그 때는 그냥 무덤덤하게 여겨 졌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멋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숨은벽 릿지길과 갈라지는 곳에서 장비를 갖추고 오르는 바위꾼들을 보며 나는 오른편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상수 형님이 부상을 당하지 않으셨다면 이 숨은벽 릿지도 할 수 있을 터인데. 산길은 숨은벽 릿지길과 백운대 사이에 난 좁은 계곡길로 이어진다.
이 건조한 시기에도 맑은 물을 담고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보충하고 가파르게 이어지는 돌계단을 오른다. 오랜 세월 굴러 내린 돌이 자연적으로 쌓여 계단을 만들고 그래도 불편한 곳에는 국립공원에서 손을 조금 보았지만 전체적으로 자연 돌계단 형태를 띠고 있다. 고개를 넘어가는 곳에 나무 계단으로 마무리를 지어 놓아 안전을 도모하였다.
호랑이 굴
숨은벽 계곡길이 끝나고 고개를 넘어가는 곳은 바위와 바위 사이 좁은 길이다. 여기서 오른편으로 가파른 바위가 백운대까지 이어지는데 그 바위 밑에 호랑이 굴이 있다. 호랑이도 숨어 있을 만큼 큰 동굴이라는 의미이겠지만 실제로 그 굴을 통과하려면 배낭을 먼저 보내고 몸만 간신히 기어서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비좁은 동굴이다. 예전에 고인돌 형님과 한 번 지나간 적이 있기에 다시 한 번 가볼까 하는 마음에 잠시 가슴만 콩닥거리다가 그냥 지나갔다. 그 호랑이굴이 있는 바위 벽에는 여러 개의 릿지 팀이 줄에 매달려 연습을 하고 있었다.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고 바위가 거칠어서 연습하기에 적당할 것 같다.
백운대 (836 미터)
백운대는 만경대 인수봉과 함께 삼각산을 이루는 봉우리 중 가장 높으며 북한산의 최고봉이다. 1919년 3.1 운동의 감동을 안고 이 북한산 정상에 올라와 바위에 정재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경천애인(敬天愛人). 독립선언문은 기미년 2월 18일 최남선이 작성하였으며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자신이 도창했다’라는 내용이다. 일본의 군국제로부터 1945년 간신히 해방되어 정부도 수립하고 경제도 발전시켰지만 아직도 그 그림자는 우리 주변에서 어른거리는 느낌이다.
바로 코 앞에 마주 보이는 인수봉에는 뜨거운 여름을 넘긴 아침부터 올라온 듯 바위꾼들이 하강 준비를 하고 있다. 전에는 저 가파른 바위를 어떻게 올라갈까 궁금하고 가보지 못한 마음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상수 형님 덕분에 한 번 올라가 보았으니 이제는 여유있게 관망하는 기분으로 바라본다. 만경대도 한 번 다녀왔으니 미련이 없다.
백운대 위에서 한가하게 늦은 점심을 먹고 하산하는데 어린 아이들 셋 명이 힘들게 바위길을 내려간다. 어디 불편하냐고 물으니 힘도 들지만 물이 부족해서 죽겠다고 한다. 내 물통에 남은 물을 주니 허겁지겁 마신다. 어디로 내려갈 거냐고 물으니 제일 빠른 기로 내려가고 싶다고 한다. 산을 내려가면 절에서 물을 맘껏 마실 수 있다고 얘기하니 아이들이 힘이 난다며 따라 나선다.
아이들은 강서구에서 온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다. 그 중 한 아이는 몸이 호리호리한데 그 무리에서 리더 격인 것 같다. 자신도 목이 마르지만 한꺼번에 다 마시지 않고 조금씩 마신다. 몸집이 크고 살이 찐 아이는 제일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연신 물을 찾고 목이 아프고 다리가 떨린다며 투덜거린다. 다른 한 아이는 그런대로 잘 버티는 것 같다. 모두 땀을 많이 흘리면서 따라온다.
인수봉 아래에는 인수암이라는 절이 있다. 그 절에 틀림없이 물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저 절에 가서 물을 얻어 마시자고 하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절에는 스테인리스 물통에 시원한 물이 가득 담겨서 마시거나 받아가도록 해 놓았다. 아이들이 물을 마시는데 보살님이 나와 그 옆에 식혜도 떠 마시라고 한다. 식혜를 뜨는 국자도 따로 있고 마시는 그릇도 비치해 놓았다. 이렇게 목마르고 지친 자들에게는 이런 물 한 모금, 식혜 한 그릇이 부처님의 가르침만큼이나 귀중한 법언이리라.
아이들은 코로나 이전에는 가끔 산에 올라갔었는데 그 이후에 처음 하는 산행이라고 한다. 리더 격인 아이가 선동해서 함께 온 산행인데 생각보다 약한 체력에 날이 더워 땀을 흘리니 물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내려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하니 아이들이 힘을 내서 따라오다가 하루재를 넘는데 다시 고개를 올라가는 것이 힘들어 한다.
도선사 입구를 300 미터 남겨두고 힘들다며 쉬어 가자 한다. 다 내려오니 택시를 타려는 사람들 줄이 길게 서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걸어서 가보자고 하였다. 아이들은 덩달아 따라오다가 얼마나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30분쯤 더 가야 한다고 하니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상의하더니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세 명의 탐험가들과 헤어져 걸었다.
북한산 우이역에서 지하철로 집에 오는 길은 나에게 익숙하다. 성신여대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동대문역사문화 역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였다. 천호역에 내려서 시장에서 복숭아를 사갈까 하다가 버스정류장에서 3324번 새로 생긴 버스를 타고 귀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