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검단산 남한산성 종주

그늘이 아닌 뙤약볕은 여전히 여름처럼 따갑게 피부를 찌른다. 그 한여름의 기세가 완전히 꺾인 것이 아닌 모양이다. 사람들은 이를 인디언 섬머 (Indian Summer)라고 한다. 나무 그늘에 들어서면 그런 더위를 느낄 수가 없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주어 등까지 시원하다.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누군가 추석 명절을 보고 ‘삼백 예순 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말했다는데 내 마음 속으로 정말 이런 날만 같으면 ‘어디 천국이 따로 있으랴’ 싶기만 하다. 공기가 깨끗하니 조망도 최고다. 검단산 정상에 서니 북쪽으로는 명지산 화악산이 보이고 동쪽에는 용문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서쪽에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선명하고 남서쪽에는 관악산과 백운산이 뚜렷하다. 산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하니 그 정도이지 만일 산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종일 앉아서 산 구경만 해도 질리지 않을 듯싶다. 검단산에서 종주길로 이어지는 산곡초등학교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자 통행하는 사람들이 뜸하다. 대부분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았기 때문이다. 두리봉(569 미터)과 용마산(596 미터) 검단산에서 한참 내려와 양지골 갈림길에서 최저점을 찍고 오르막이 시작된다. 예전 기억으로는 그냥 능선을 따라 약간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던 것 같은데 두리봉으로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봉우리 이름이야 그냥 두리둥실 밋밋한 봉우리라는 뜻으로 지었겠지만 그래도 산 하나를 넘어왔으니 몸이 지쳐간다. 큰 소나무 아래 널찍한 바위들이 늘어선 곳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정표도 없는 두리봉을 넘어 다시 내리막 길이다. 그리고 오르막 언덕을 오르면서 용마산 정상이려니 하지만 다시 내리막이다. 작은 둔덕산을 넘어 오르막을 또 한참 오른 후에야 작은 돌탑이 있는 용마산(龍馬山)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엄미리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마을은 ‘엄미리’다. 이름이 참 예쁘다. 원래 이 곳의 지명은 ‘은고개(奄峴 엄현)’라는 마을과 ‘미라울’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1914년 일제 감점기 전국 토지조사때 이 두 마을 이름의 앞자를 따서 지어낸 이름이 엄미리라고 한다. (경기도 광주시 엄미리 마을 유래https://jos3579.tistory.com/88) 전에는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 적이 있고 또 검단산에서 내려와서 여기서 중단하고 집으로 간 적이 있으니 이 엄미리를 지나간 것이 두 세 번은 되는 것 같다. 날이 그다지 덥지 않은데다 줄곧 나무 그늘길을 걸어서 그런 건지 집에서 얼려온 물이 아직도 다 녹지 않았다. 어디쯤 물을 보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약수터를 만나지 못했다. 편의점이 있으면 콜라를 한 병 마시고 싶은데 둘러봐도 마땅한 가게는 보이지 않고 여러 식당만 눈에 띈다. 엄미리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팬션이 있기에 인기척을 내니 안에서 일하던 부부가 나오기에 물 좀 얻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내 행색을 살펴보던 바깥 주인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검단산을 넘어왔으며 남한 산성을 넘어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그 자신도 산을 좋아한다면서 내가 건네준 물병에 정수기 물을 가득 담아 준다. 또 한 번 산행 중에 고마운 은인을 만났다. 약사산(415.9) 약수산(397)을 넘어 남한산(522.1)으로 엄미리에서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고도 비탈진 산길은 계속된다. 누군가 길 옆에 탄피를 한 주먹 주어다 놓았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산길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헤드셋을 쓰고 ‘영웅문’을 들으면서 걸으니 지루함을 이기는데 그만한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다. 간간히 도토리와 알밤이 땅에 떨어져 뒹구는 데 눈에 띄는 알밤을 줍는 것도 재미있다. 변변한 이정표 하나도 없는 약사산을 넘어 지나가니 내리막 길에 나무 계단이 나타난다. 이런 낮은 산 정상도 무너지다 남은 바위가 있어 최대한 안전을 고려하여 설치한 계단길이다. 오후 네 시가 가까워 온다. 계단에 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걸어서 남한산성 서문에서 해넘이를 보고 내려가자고 생각하였다. 남한산성의 해넘이 풍경도 일부러 찾아가 볼 만큼 멋진 곳이니 오늘 마지막 방점을 그곳에 찍기로 정하였다. 계단을 내려와 조금 더 걸으니 나지막한 고개가 나오고 다시 한적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약수산은 이 산 아래에 약수가 나오는 샘이 있었기에 부르던 이름이라고 한다. 주변이 온통 신갈나무와 단풍나무 등 활엽수림이라 그늘이 짙게 드리운다. 며칠만 지나 단풍이 물들면 참 멋질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평소 끊이지 않고 산객들이 왕래하는 길이라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남한산으로 오르면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군사들이 벌봉에 진지를 구축하고 대포를 쏘아 우리 군사들을 위협했다는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전쟁의 고달픔을 상상하였다. 나 자신 전쟁을 겪지 않아 그 처참함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산비탈 길에 대포를 지고 올랐을 우리의 선조들을 상상해 보았다. 청나라 군사들이 직접 대포를 들고 오르지는 않았을 터, 분명 이 부근에 사는 주민들을 동원하여 물자를 옮겼을 것이다. 이렇게 맨몸으로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온갖 물자를 나르던 그 당시 촌민들의 고달픈 삶을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남한산(南漢山 522.1) 내 걸음도 느린 편인데 남한산으로 오르는 길에 몸이 지치니 더 더뎌 진다. 하늘이 저녁 빛을 보이고 해는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남한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6시가 다 되었다. 성벽 안쪽의 너른 공터에는 온갖 잡풀이 우거지고 햇볕이 드는 곳에는 쑥부쟁이 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멀지 않은 벌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숲 길에 마지막 산을 넘은 햇살이 황금색으로 나무에 비친다. 서문(右翼門)에서 해넘이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과 그래도 종일 지나온 발길에 대한 뿌듯함이 교차한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안쪽에 난 편안한 길로 내려섰다. 얼마 전에 수리되어 개방된 북문(全勝門)을 지나 서문(右翼門)으로 가는 길에 벤치에 앉아 남은 음식을 먹었다. 해넘이를 구경하고 내려가는 사람들과 가족단위로 주말의 마지막 시간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서문에 당도하여 남한산성 야경 조망처를 다녀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이미 해도 넘어갔고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어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핸드폰의 조명에 의지하여 마천역까지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였다.

Hiking/Backpacking

Hanam-si, Gyeonggi, South Korea
bethewise photo
time : Sep 28, 2024 9:18 AM
duration : 10h 49m 37s
distance : 22.9 km
total_ascent : 1755 m
highest_point : 670 m
avg_speed : 2.4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그늘이 아닌 뙤약볕은 여전히 여름처럼 따갑게 피부를 찌른다. 그 한여름의 기세가 완전히 꺾인 것이 아닌 모양이다. 사람들은 이를 인디언 섬머 (Indian Summer)라고 한다. 나무 그늘에 들어서면 그런 더위를 느낄 수가 없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주어 등까지 시원하다.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누군가 추석 명절을 보고 ‘삼백 예순 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말했다는데 내 마음 속으로 정말 이런 날만 같으면 ‘어디 천국이 따로 있으랴’ 싶기만 하다. 공기가 깨끗하니 조망도 최고다. 검단산 정상에 서니 북쪽으로는 명지산 화악산이 보이고 동쪽에는 용문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서쪽에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선명하고 남서쪽에는 관악산과 백운산이 뚜렷하다. 산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하니 그 정도이지 만일 산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종일 앉아서 산 구경만 해도 질리지 않을 듯싶다. 검단산에서 종주길로 이어지는 산곡초등학교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자 통행하는 사람들이 뜸하다. 대부분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았기 때문이다. 두리봉(569 미터)과 용마산(596 미터) 검단산에서 한참 내려와 양지골 갈림길에서 최저점을 찍고 오르막이 시작된다. 예전 기억으로는 그냥 능선을 따라 약간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던 것 같은데 두리봉으로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봉우리 이름이야 그냥 두리둥실 밋밋한 봉우리라는 뜻으로 지었겠지만 그래도 산 하나를 넘어왔으니 몸이 지쳐간다. 큰 소나무 아래 널찍한 바위들이 늘어선 곳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정표도 없는 두리봉을 넘어 다시 내리막 길이다. 그리고 오르막 언덕을 오르면서 용마산 정상이려니 하지만 다시 내리막이다. 작은 둔덕산을 넘어 오르막을 또 한참 오른 후에야 작은 돌탑이 있는 용마산(龍馬山)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엄미리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마을은 ‘엄미리’다. 이름이 참 예쁘다. 원래 이 곳의 지명은 ‘은고개(奄峴 엄현)’라는 마을과 ‘미라울’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1914년 일제 감점기 전국 토지조사때 이 두 마을 이름의 앞자를 따서 지어낸 이름이 엄미리라고 한다. (경기도 광주시 엄미리 마을 유래https://jos3579.tistory.com/88) 전에는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 적이 있고 또 검단산에서 내려와서 여기서 중단하고 집으로 간 적이 있으니 이 엄미리를 지나간 것이 두 세 번은 되는 것 같다. 날이 그다지 덥지 않은데다 줄곧 나무 그늘길을 걸어서 그런 건지 집에서 얼려온 물이 아직도 다 녹지 않았다. 어디쯤 물을 보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약수터를 만나지 못했다. 편의점이 있으면 콜라를 한 병 마시고 싶은데 둘러봐도 마땅한 가게는 보이지 않고 여러 식당만 눈에 띈다. 엄미리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팬션이 있기에 인기척을 내니 안에서 일하던 부부가 나오기에 물 좀 얻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내 행색을 살펴보던 바깥 주인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검단산을 넘어왔으며 남한 산성을 넘어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그 자신도 산을 좋아한다면서 내가 건네준 물병에 정수기 물을 가득 담아 준다. 또 한 번 산행 중에 고마운 은인을 만났다. 약사산(415.9) 약수산(397)을 넘어 남한산(522.1)으로 엄미리에서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고도 비탈진 산길은 계속된다. 누군가 길 옆에 탄피를 한 주먹 주어다 놓았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산길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헤드셋을 쓰고 ‘영웅문’을 들으면서 걸으니 지루함을 이기는데 그만한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다. 간간히 도토리와 알밤이 땅에 떨어져 뒹구는 데 눈에 띄는 알밤을 줍는 것도 재미있다. 변변한 이정표 하나도 없는 약사산을 넘어 지나가니 내리막 길에 나무 계단이 나타난다. 이런 낮은 산 정상도 무너지다 남은 바위가 있어 최대한 안전을 고려하여 설치한 계단길이다. 오후 네 시가 가까워 온다. 계단에 앉아 간식을 먹으면서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걸어서 남한산성 서문에서 해넘이를 보고 내려가자고 생각하였다. 남한산성의 해넘이 풍경도 일부러 찾아가 볼 만큼 멋진 곳이니 오늘 마지막 방점을 그곳에 찍기로 정하였다. 계단을 내려와 조금 더 걸으니 나지막한 고개가 나오고 다시 한적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약수산은 이 산 아래에 약수가 나오는 샘이 있었기에 부르던 이름이라고 한다. 주변이 온통 신갈나무와 단풍나무 등 활엽수림이라 그늘이 짙게 드리운다. 며칠만 지나 단풍이 물들면 참 멋질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평소 끊이지 않고 산객들이 왕래하는 길이라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남한산으로 오르면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군사들이 벌봉에 진지를 구축하고 대포를 쏘아 우리 군사들을 위협했다는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전쟁의 고달픔을 상상하였다. 나 자신 전쟁을 겪지 않아 그 처참함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산비탈 길에 대포를 지고 올랐을 우리의 선조들을 상상해 보았다. 청나라 군사들이 직접 대포를 들고 오르지는 않았을 터, 분명 이 부근에 사는 주민들을 동원하여 물자를 옮겼을 것이다. 이렇게 맨몸으로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온갖 물자를 나르던 그 당시 촌민들의 고달픈 삶을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남한산(南漢山 522.1) 내 걸음도 느린 편인데 남한산으로 오르는 길에 몸이 지치니 더 더뎌 진다. 하늘이 저녁 빛을 보이고 해는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남한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6시가 다 되었다. 성벽 안쪽의 너른 공터에는 온갖 잡풀이 우거지고 햇볕이 드는 곳에는 쑥부쟁이 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멀지 않은 벌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숲 길에 마지막 산을 넘은 햇살이 황금색으로 나무에 비친다. 서문(右翼門)에서 해넘이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과 그래도 종일 지나온 발길에 대한 뿌듯함이 교차한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안쪽에 난 편안한 길로 내려섰다. 얼마 전에 수리되어 개방된 북문(全勝門)을 지나 서문(右翼門)으로 가는 길에 벤치에 앉아 남은 음식을 먹었다. 해넘이를 구경하고 내려가는 사람들과 가족단위로 주말의 마지막 시간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서문에 당도하여 남한산성 야경 조망처를 다녀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이미 해도 넘어갔고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어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핸드폰의 조명에 의지하여 마천역까지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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