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rwon-gun, Gangwon State, South Korea
time : Feb 9, 2025 9:28 AM
duration : 7h 42m 16s
distance : 26.6 km
total_ascent : 440 m
highest_point : 230 m
avg_speed : 4.3 km/h
user_id : bethewise
user_firstname : 상복
user_lastname : 박
약 2주가량 계속된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한강물은 제대로 얼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한강 중간까지 마차를 끌고 가서 두터운 얼음을 채취하여 동빙고 서빙고에 저장해 놓고 여름에도 궁중에서 얼음을 먹을 수 있다 하였고, 1950년 6.25 전쟁때도 수 많은 서울 시민들이 한강을 걸어 피난 가는 장면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해마다 3월쯤 되면 한강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이 매스컴의 단골 뉴스이기도 했다. 그랬던 한강이 언제부터 인지 한겨울에도 제대로 얼지 못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얼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온난화로 대변되는 기후변화 때문일까? 어렸을 적 추억으로 남아 있던 겨울이 차츰 기억에서 녹아 사라져간다.
이정도로 춥다면 적어도 겨울 얼음 트레킹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한탄강에는 틀림없이 얼음이 얼었을 거라 생각했다. 여름에 한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얼음이 어는 겨울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한탄강을 보고 싶었다.
한탄강(漢灘江)
포천 신남까지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창밖을 보니 눈 풍경이 점점 사라진다. 어제 다녀온 도봉산에도 눈이 많이 쌓였는데 경기북부 지역인 포천에도 눈의 흔적이 희미하다. 그래도 한탄강에 얼음은 얼어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간직한 채 트레킹 시작점임 순담 매표소에 도착했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청명하고, 기온은 낮아 영하 4~5도쯤 될 듯한데 두 세 겹 끼워 입은 재킷과 내피는 파고들지 못한다. 장갑을 벗으면 손이 시리지만 다시 장갑을 끼면 금방 따뜻해 지는 정도다.
매표소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성인 입장료가 10,000 원인데 그중 50 %인 5천원은 지역상품권으로 교환해 준다. 그러니까 순수 입장료는 5천원인 셈이다. 코스는 ‘순담’에서 주상절리길을 따라 설치한 데크 길을 따라 ‘드르니’까지 걷는 것이다.
눈은 없으나 데크 길은 미끄럽다. 한 발자국마다 미끄럼 방지 패치를 붙여 놓았으나 가끔 이를 망각하고 패치 사이를 딛다가 미끄러져 깜짝 깜짝 놀란다. 데크 길은 강의 왼편 절벽 중간쯤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옛날 중국의 산악지대 바위에 설치했던 잔도(棧道)를 모방하여 만든 것인데, 이 한탄강의 잔도는 목재 모양의 플라스틱 데크와 알루미늄 판을 사용하여 설치해 놓았기에 거의 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오른편 강언덕에 펼쳐지는 판상절리(板狀節理)와 왼편에 가끔씩 나타나는 주상절리(柱狀節理)를 살피며 걷는다. 특히, 강 건너편의 판상절리는 어떻게 저런 모습이 생겨날 수 있는 건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판상절리라는 말은 원래 평평한 화강암 아래에서 용암이 분출하며 솟아올라 그 화강암을 깨트려 생긴 바위의 모양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이러하 설명으로 강 반대편 바위 절벽의 모양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다. 바위 절벽이 3층 또는 4층으로 되어 있다. 각 증은 분명한 경계를 이룬다. 한층 위에 다른 층이 조금 더 안쪽으로 수직으로 솟아 있고, 그 위층도 조금 더 안쪽으로 수직벽을 이룬다. 그리고 나서 맨 위층은 돌이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흙이 되었고 그 흙 층에 너른 평원이 펼쳐지는 것이다. 정말 신기한 모양이다.
한 무리의 산악회 회원들이 지나가며 그 신비로운 바위를 보면서 각자 한 마디씩 품평을 하는데 “와, 저 주상복합 정말 멋지다.”하고 한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으며 말하니 “응, 그래 맞어. 그러니까 기네스에 올랐다잖어.” 하고 맞장구를 친다. 이들은 아마 버스에서 대장이 설명하는 내용을 듣고 나름대로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한탄강의 주상절리 등이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정 받았다는 말을 이렇게 소화한 것이다.
한탄강 강변의 암석층은 주로 용암이 땅 속에서 굳어진 화강암과 공기중에서 굳어진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화강암은 한반도의 대부분 지역에서 발견되는 암석이니 그러려니 이해가 되지만, 화산폭발로 인해 생겨난다는 현무암이 어떻게 이 곳에서 발견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나의 짧은 지식이 제주도의 현무암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어서 그런건가? 정말로 아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제주도 한라산처럼 화산이 폭발해야 땅 속의 마그마가 공기중으로 날아올라 불타다가 굳어져야 생기는 것이 현무암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있다.
자료를 대충 찾아보니 이 곳의 현무암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만(어떤 자료에는 27만) 년 전에 강원도 평강으로부터 남서쪽으로 3 km 정도 떨어진 오리산에서 적어도 11번의 화산 폭발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50만 년 전에 폭발한 화산으로 인해 생겨난 현무암이 다시 땅 속에 묻혔다가 지각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인해 드러난 것일까? 그 장구한 세월이 만들어낸 자연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신의 영역일 것이다. 그 오리산은 50억년 전 화산 폭발이 있었을 때 지금의 한라산이나 백두산처럼 평지에 불쑥 솟아 있었을까?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화산이 빗물에 씻겨 무너지고 그 흙이 평평하게 쌓였을까? 그 평평한 흙 위로 물이 흘러 강이 되고 점차 그 흙 속의 돌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옛날 교과서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행천(蛇行川)이라고 배웠던 그 한탄강의 탄생과 성장에 대한 비밀을 살짝 엿보는 기분이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76432
강물은 곳곳이 얼어 있다. 여울이 빠른 곳은 강물이 흰 거품을 내면서 흐른다. 깊은 곳은 원래 강물이 품고 있던 옥(玉) 빛을 얼음 속에 고스란히 보듬고 있었다. 가끔 그 두터운 얼음이 숨쉬는 소리가 데 크길 위까지 들린다. 지금은 바야흐로 얼음을 벗어나 봄을 꿈꾸는 계절이다. 아직은 매서운 기운이 곳곳에 숨겨져 있으나, 계절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잔도길에는 곳곳에 다리 이름을 붙여 놓았으나 그 이름과 정확하게 들어맞는 주변 바위 형상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바위의 모습은 원숭이, 물고기, 자라, 돼지 등 여러 형상을 띠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보는 사람의 상상력이 동의해야만 보이는 것들이다. 내 아둔한 눈은 아무것도 제대로 찾아낼 수 없다. 곳곳에 배치된 쉼터에서 일하는 안내원에게 물어서야 비로소 몇 개의 비슷한 바위를 찾아낼 수 있었다.
드르내에서 순환버스를 탄다.
그렇게 사람들 틈을 따라 주변 풍경을 감탄하며 걷다 보니 눈 앞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가 나타난다. 주상절리 탐방로 끝이라고 한다. 계단을 한참 오르니 너른 평원이 펼쳐지고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데크도 마련되어 있다.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앉아서 멍 때리기에 좋은 환경이다. 순담 탐방안내소 입구에서 산 수수강정과 커피를 꺼내 먹으려고 하니 주변에 서 있던 안내원이 다가와 이 곳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그 주변에 있는 식당이나 편의점 등을 이용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드르니’라는 지명 이름이 궁금하여 안내원에게 물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이 지역에서 패권을 놓고 다투던 태봉국의 궁예 왕이 자신의 부하였던 왕건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이 한탄강을 건너 이 곳에 들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설사가 설명해 준다. 이 철원이나 포천 지역에는 어디에나 궁예와 왕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지역에서 한탄강은 철원군과 포천군의 경계를 이룬다. 다리를 건너 포천군으로 넘어가니 산악회에서 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벤치와 바닥에 앉아서 음식물을 먹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는다. 여기는 철원군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인 듯 안내원은 그 주변에서 서성거리다가 그냥 다리를 넘어간다. 재미난 광경이다. 마치 북쪽에서 도망쳐온 북한군이 판문점 다리를 건너서 더 이상 간섭을 받지 않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물론 그런 장면이 실제로 언제나 연출될 지는 모르는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