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할매길을 가다 (의재미술관ㅡ증심사ㅡ봉황대ㅡ천제단ㅡ백운암터ㅡ너덜겅)

요사이는 무등산을 오를때 주로 요요마의 의자가 있는 신양파크뒷길 장원봉쪽을 가는데, 실로 오랫만에 증심사쪽으로 계획을 잡았다. 이쪽 산행은 아마도 십여년은 더 넘었을까? 까마득하다. 나의 목표는 너덜겅의 바위위에 누워 하늘을 보는 것이니 중머리재로 가는 길을 택했다. 입구부터 증심사까지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걷기싫어 의재미술관장인 후배찬스를 써서 입구차단봉을 거뜬히 올려버리고 한참을 올라가니 의제미술관이다. 너무 멀게 느껴지는걸보니 오랫만에 온거 맞다. 30대때 운림동 무등파크에 살때는 매일 아침 왔던 길인데 ...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미술관앞에서 착하게 기다리고있는 미술관장인 최선옥후배와 반갑게 조우하고 잠시 미술관에서 녹차를 마셨는데, 깔끔한 미술관안에서 본 초록빛이 너무 신선했다. 마침 전시중인 의재 허백련의 삶과 예술자료전을 보고는 싶으나 성격상 대충 볼수없어 담주에 친구들 떼거리로 와서 보기로하고 차로 돌아와 등산화를 신고 스틱도 챙기고 베낭을 멘다. 준비끝. 인자 너덜겅을 향해 증심사입구 깔끄막을 깔끔하게 올라가 계곡위 작은 다리를 건너 주산행길이 아닌 왼쪽으로 난 작은 샛길로 들어간다. 이쪽으로 봉황대가는 길이 중머리재로 올라가는 가장 편한 길이라는 걸 나는 익히 알고있다. 내가 삼십대즈음에 이 길이름을 "할매길"이라고 지어주었다. 할매들이 올라가는 편한 길이어서 그렇다. 내가 벌써 그나이가 되어 네발로 올라간다. 고마운 나의 발, 스틱이여~~ 대나무숲을 지나니 두갈래길인데 여기서 늘 헷갈렸던 기억이난다. 늘 오른쪽으로 가야하는 좌측으로갔다 다시 빽코스한... 그런데 2022년에 이샛길이 정비되어 우측길은 막아버리고 중간에 새길을 만들어 옛길과 연결되게 정비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산길이 대형 도로로 시원하게 나있어서 길은 좋으나 옛정취는 나질 않는다. 몇번이나 아껴가면 쉬면서 이 정적과 침묵과 새소리 그리고 나뭇잎사이의 광휘를 온 영혼으로 맞이한다. 정말 좋다. 어제도 장원봉을 갔지만 이런 느낌은 다른 분위기다. 예전의 삼사십대의 나로 돌아가 끊임없이 나를 따라오는 햇살을 맞으며 이 시간을 아깝게 즐긴다. 한참 올라가니 늘 그자리에 있던 이름모를 무덤이 있고 납작바위가 있어 배낭을 다시풀고 앉았다. '무념 무상 무장 무애' 이 말은 이런 순간에 딱 어울리는 말인거같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 홀로 앉아 녹음을 즐기자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인간인가. 이마에 살짝 바람이 인사한다. 괜히 고맙고 눈물이난다. Pneuma,,, 성령이 오셨다. 산을 마치 히말라야를 오르듯 천천히 천천히 쉬엄쉬엄올라가니 고래바위도 여전하다. 검버섯핀 녀석의 등허리를 쓰다듬어 주고 앉지는 않았다. 예전에 얼마나 많은 시간 나를 앉혀 쉬게 해주었던가. 이녀석도 늙어 검버섯이 이곳 저곳에 ..., 차마 앉지못하고 ... 고래바위가 나오면 바로 너른 숲이 나타나 그 바로 위가 봉황대다. 이 너른 숲은 정월초하루에 내가 초등학교때 이모와 함께 산신당할머니가 사시는 이 동네에 와서 식구들의 그해운수를 듣고 갔었다. 머리가 산신령처럼 하얀 할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비극은 예전에 이마을에 무등산 도끼사건이다. 어떤 청년의 무서운 사건이었다는것만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동네는 이제 다 없어지고 초목과 바우들만 있을뿐. 드디어 봉황대다. 예전에는 무등산이 곳곳마다 물이 좋아 수통만 가져가면 되었는데 식수불가, 대장균+하더니만 오늘 가보니 아예 없어졌다. 대신 무명의인들의 비가 있어 나도 돌멩이 하나 얹어 5.18의인들과 이제껏 내고향을 지키고 가꾼 이들의 복을 빌었다. 무등산과 하느님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내고향 빛고을은 성장하고 발전했다. 묵묵히 우리의 과거와 지금과 미래에 거룩한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할것이다. 봉황대에서 좌로가면 토끼등, 우로가면 백운암터과 중봉으로 가는 길. 나는 오른쪽으로 가서 잠시 천제단에 들럿다. 반가운 천제단. 1978년 예과 일학년 봄, 나는 아버지와 함께 민학회에서 매년하는 행사인 기우제를 드리기위해 내인생에 베낭을 맨 첫산행을 했다. 이 천제단은 선친 최기영 미카엘의 소유지였고 의재선생님과 선친과 연진회가 이 제단을 만들었다. 단군사상을 가진 우리어르신들의 조상을 모시는 禮이자 마땅하고 옳은 삶의 양식이었을 것이다. 의재선생과 제자들이 돌맹이로 제단을 쌓아놓으면 기독교신자셨던 의재선생부인이 우상숭배라고 부셔버리고 또싸고 부시고를 했지만 어르신들의 지극한 마음은 하늘도 아셨을까? 아직까지 천제단이 있다. 예전보다 더 정비가 되고 펫말도 페인트가 더 이쁘게 칠해졌고 펫말 위치만 바꾸어져있고 새롭게 천제단이라고 돌가운데 써있었다. 이땅은 우리땅(아버지의 땅은 내땅?)에서 울 큰오빠 최동림의 땅이 되었다. 언젠가는 울아버지가 무등산보호재단에 장군봉을 드렷듯이 울오라버니도 광주시에 기부하여 진짜 우리땅이 되는 날을 기도해본다. 이쁜 숲속을 지나 백운암터에 도착했다. 여기서 중머리는 오백미터밖에 안되지만, 나는 숲에서 나와 갑자기 열린 하늘과 너덜겅을 보고 스톱하기로했다. 오늘 산행의 목적은 중머리재에 가는 것이 아니라 너덜겅에서 하늘 보며 누워있는 것이었지않나. 위쪽으로 갈까? 아랫쪽으로 갈까하다 윗쪽에 마음을 싣고 너덜겅을 조심조심 올라 너른 바위를 발견하고 점심을 샤신머스켓과 배로 대신하고 따뜻한 커피를 한잔하고 나니 너무 좋다. 베낭을 벼개삼아 벌러덩 누우니, 푸르다못해 눈이 시린 파아란 하늘과 햇빛받은 나무들이 반짝이는 공제선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바람은 시원하고 양무릅을 데우는 햇살은 포근 포근, 따땃하고 귀에서는 내맘의 강물이 흐른다. 눈을 감고 그냥 있었다. 그냥 그냥 있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바우내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산사람에게는 바위냄새가 난다" 이 글을 읽고 있을 그대여, 이런 너덜겅에 그냥 누워 햇살을 만끽할수 있는 그대는 사소함의 기쁨을 아는 자로다. 감각, 느낌 이런 것을 정의할 필요도 없다. 그저 존재하라. Well Being, Being Well. 이렇게 한동안 살다가 내려왔다. 누가 이런 아름답고,기쁘고 즐거운, 깊은 사소함을 선물하였겠는가? 은혜로다. 은총이로다. 하느님, 나의 하느님~~~ 오늘도 걸음걸음, 한숨길 한숨길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10.4. 開天절 다음날에 요요마 無等에서 살다.

Hiking/Backpacking

Gwangju, South Korea
birdychoi photo
time : Oct 4, 2024 10:17 AM
duration : 4h 58m 1s
distance : 4 km
total_ascent : 376 m
highest_point : 578 m
avg_speed : 1.1 km/h
user_id : birdychoi
user_firstname : 명숙
user_lastname : 최
요사이는 무등산을 오를때 주로 요요마의 의자가 있는 신양파크뒷길 장원봉쪽을 가는데, 실로 오랫만에 증심사쪽으로 계획을 잡았다. 이쪽 산행은 아마도 십여년은 더 넘었을까? 까마득하다. 나의 목표는 너덜겅의 바위위에 누워 하늘을 보는 것이니 중머리재로 가는 길을 택했다. 입구부터 증심사까지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걷기싫어 의재미술관장인 후배찬스를 써서 입구차단봉을 거뜬히 올려버리고 한참을 올라가니 의제미술관이다. 너무 멀게 느껴지는걸보니 오랫만에 온거 맞다. 30대때 운림동 무등파크에 살때는 매일 아침 왔던 길인데 ...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미술관앞에서 착하게 기다리고있는 미술관장인 최선옥후배와 반갑게 조우하고 잠시 미술관에서 녹차를 마셨는데, 깔끔한 미술관안에서 본 초록빛이 너무 신선했다. 마침 전시중인 의재 허백련의 삶과 예술자료전을 보고는 싶으나 성격상 대충 볼수없어 담주에 친구들 떼거리로 와서 보기로하고 차로 돌아와 등산화를 신고 스틱도 챙기고 베낭을 멘다. 준비끝. 인자 너덜겅을 향해 증심사입구 깔끄막을 깔끔하게 올라가 계곡위 작은 다리를 건너 주산행길이 아닌 왼쪽으로 난 작은 샛길로 들어간다. 이쪽으로 봉황대가는 길이 중머리재로 올라가는 가장 편한 길이라는 걸 나는 익히 알고있다. 내가 삼십대즈음에 이 길이름을 "할매길"이라고 지어주었다. 할매들이 올라가는 편한 길이어서 그렇다. 내가 벌써 그나이가 되어 네발로 올라간다. 고마운 나의 발, 스틱이여~~ 대나무숲을 지나니 두갈래길인데 여기서 늘 헷갈렸던 기억이난다. 늘 오른쪽으로 가야하는 좌측으로갔다 다시 빽코스한... 그런데 2022년에 이샛길이 정비되어 우측길은 막아버리고 중간에 새길을 만들어 옛길과 연결되게 정비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산길이 대형 도로로 시원하게 나있어서 길은 좋으나 옛정취는 나질 않는다. 몇번이나 아껴가면 쉬면서 이 정적과 침묵과 새소리 그리고 나뭇잎사이의 광휘를 온 영혼으로 맞이한다. 정말 좋다. 어제도 장원봉을 갔지만 이런 느낌은 다른 분위기다. 예전의 삼사십대의 나로 돌아가 끊임없이 나를 따라오는 햇살을 맞으며 이 시간을 아깝게 즐긴다. 한참 올라가니 늘 그자리에 있던 이름모를 무덤이 있고 납작바위가 있어 배낭을 다시풀고 앉았다. '무념 무상 무장 무애' 이 말은 이런 순간에 딱 어울리는 말인거같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 홀로 앉아 녹음을 즐기자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인간인가. 이마에 살짝 바람이 인사한다. 괜히 고맙고 눈물이난다. Pneuma,,, 성령이 오셨다. 산을 마치 히말라야를 오르듯 천천히 천천히 쉬엄쉬엄올라가니 고래바위도 여전하다. 검버섯핀 녀석의 등허리를 쓰다듬어 주고 앉지는 않았다. 예전에 얼마나 많은 시간 나를 앉혀 쉬게 해주었던가. 이녀석도 늙어 검버섯이 이곳 저곳에 ..., 차마 앉지못하고 ... 고래바위가 나오면 바로 너른 숲이 나타나 그 바로 위가 봉황대다. 이 너른 숲은 정월초하루에 내가 초등학교때 이모와 함께 산신당할머니가 사시는 이 동네에 와서 식구들의 그해운수를 듣고 갔었다. 머리가 산신령처럼 하얀 할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비극은 예전에 이마을에 무등산 도끼사건이다. 어떤 청년의 무서운 사건이었다는것만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동네는 이제 다 없어지고 초목과 바우들만 있을뿐. 드디어 봉황대다. 예전에는 무등산이 곳곳마다 물이 좋아 수통만 가져가면 되었는데 식수불가, 대장균+하더니만 오늘 가보니 아예 없어졌다. 대신 무명의인들의 비가 있어 나도 돌멩이 하나 얹어 5.18의인들과 이제껏 내고향을 지키고 가꾼 이들의 복을 빌었다. 무등산과 하느님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내고향 빛고을은 성장하고 발전했다. 묵묵히 우리의 과거와 지금과 미래에 거룩한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할것이다. 봉황대에서 좌로가면 토끼등, 우로가면 백운암터과 중봉으로 가는 길. 나는 오른쪽으로 가서 잠시 천제단에 들럿다. 반가운 천제단. 1978년 예과 일학년 봄, 나는 아버지와 함께 민학회에서 매년하는 행사인 기우제를 드리기위해 내인생에 베낭을 맨 첫산행을 했다. 이 천제단은 선친 최기영 미카엘의 소유지였고 의재선생님과 선친과 연진회가 이 제단을 만들었다. 단군사상을 가진 우리어르신들의 조상을 모시는 禮이자 마땅하고 옳은 삶의 양식이었을 것이다. 의재선생과 제자들이 돌맹이로 제단을 쌓아놓으면 기독교신자셨던 의재선생부인이 우상숭배라고 부셔버리고 또싸고 부시고를 했지만 어르신들의 지극한 마음은 하늘도 아셨을까? 아직까지 천제단이 있다. 예전보다 더 정비가 되고 펫말도 페인트가 더 이쁘게 칠해졌고 펫말 위치만 바꾸어져있고 새롭게 천제단이라고 돌가운데 써있었다. 이땅은 우리땅(아버지의 땅은 내땅?)에서 울 큰오빠 최동림의 땅이 되었다. 언젠가는 울아버지가 무등산보호재단에 장군봉을 드렷듯이 울오라버니도 광주시에 기부하여 진짜 우리땅이 되는 날을 기도해본다. 이쁜 숲속을 지나 백운암터에 도착했다. 여기서 중머리는 오백미터밖에 안되지만, 나는 숲에서 나와 갑자기 열린 하늘과 너덜겅을 보고 스톱하기로했다. 오늘 산행의 목적은 중머리재에 가는 것이 아니라 너덜겅에서 하늘 보며 누워있는 것이었지않나. 위쪽으로 갈까? 아랫쪽으로 갈까하다 윗쪽에 마음을 싣고 너덜겅을 조심조심 올라 너른 바위를 발견하고 점심을 샤신머스켓과 배로 대신하고 따뜻한 커피를 한잔하고 나니 너무 좋다. 베낭을 벼개삼아 벌러덩 누우니, 푸르다못해 눈이 시린 파아란 하늘과 햇빛받은 나무들이 반짝이는 공제선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바람은 시원하고 양무릅을 데우는 햇살은 포근 포근, 따땃하고 귀에서는 내맘의 강물이 흐른다. 눈을 감고 그냥 있었다. 그냥 그냥 있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바우내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산사람에게는 바위냄새가 난다" 이 글을 읽고 있을 그대여, 이런 너덜겅에 그냥 누워 햇살을 만끽할수 있는 그대는 사소함의 기쁨을 아는 자로다. 감각, 느낌 이런 것을 정의할 필요도 없다. 그저 존재하라. Well Being, Being Well. 이렇게 한동안 살다가 내려왔다. 누가 이런 아름답고,기쁘고 즐거운, 깊은 사소함을 선물하였겠는가? 은혜로다. 은총이로다. 하느님, 나의 하느님~~~ 오늘도 걸음걸음, 한숨길 한숨길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10.4. 開天절 다음날에 요요마 無等에서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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