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 잠두봉, 양화진, 양화나루, 외국인, 선교사, 독립운동
Seoul, South Korea
time : Aug 2, 2014 12:53 PM
duration : 1h 28m 3s
distance : 2.2 km
total_ascent : 138 m
highest_point : 54 m
avg_speed : 1.5 km/h
user_id : ljs2011
user_firstname : 정수
user_lastname : 이
조선시대에 전라, 충청, 황해, 평안의 물산(세곡 등)들이 해로를 통해 강화도를 돌아 바닷길로 한양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산지가 양화나루(津)이다. 이 해로를 방어하기 위한 방어기지가 김포의 문수산성, 고양의 행주산성이고, 마지막으로는 양화나루에 양화진(镇)을 두었다.(고지도상 진을 津, 镇으로 병용 또는 혼용하여 쓰는 사유이다)
행주산성을 본 김에 양화나루가 있었던 터의 부근에 있는 절두산(切头山)천주교 성지에 갔다. 이 성지가 있는 곳의 과거 명칭는 누에머리와 비슷하다 하여 잠두봉(蚕头峰)이다.
아래의 유적지 설명판에서와 같이, 이곳의 양화나루는 바다 뱃길의 마지막 관문인 까닭에 상업과 군사의 요충지이기도 했고, 근처의 모래사장과 잠두봉이 어울려서 낙조가 일품인 경승지이기도 했다.
절두산이라는 명칭은, 1866년(고종 3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도들이 이곳에서 처형된 순교지인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서, 깍아지른 산 언덕에서 순교자들의 목을 쳐서 그 목이 바로 한강에 떨어진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천주교의 성지를 본 김에 주변에 있는 개신교의 성지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에 갔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 초기에는 주로 감리교의 선교사가 활동을 하였는데, 저가 역사시간에 배운, 한국의 독립운동에 힘쓰신 베델, 헐버트,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생들의 묘를 사진에 담아 보았다
천주교성지와 개신교 성지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도 화합의 차원에서 뜻이 깊다.